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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황동그릇과 옷 나무수저세트가죽열쇠지갑.진주등가져와
박향선 |2026.05.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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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황동그릇과 옷 나무수저세트가죽열쇠지갑.진주등가져와
방글라데시에서 평상시 즐겨치던 하모니언과 토불라. 입던 옷도 가져오고 채소씨앗은 외교행랑으로
26.05.12 0747l박향선na4am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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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방글라데시에서 한국으로 돌아올때 황동 그릇과 잔을 사가지고 들어왔다. 벨메틸과 잔으로 제사지낼때 퇴주잔과 술잔을 하려고 6개을 사가지고 왓다.
한국청년해외봉사단으로 간 방글라데시에는 잘사는 동네나 일반 가게에도 수공예전문점들이 여러군데 있었다. 그중에 아롱이 규모가 가장 컸다. 1층부터 4층인가 5층까지 각종 수공예품에서 그나라 전통 복장인 살로와르 카미 방자비가 전시되고 한컨에는 홍차을 파는 찻집이 있었다. 영국런던에는 아롱수공예전문점이 지점을 냈었다. 나도 한국에 수공예품 전시 빌딩을 하나 하고 싶어서 왔다 갔다 했는데 코바 회원과 월트프랜즈회원이 봉사단으로 나가 만든 상품도 국내에서 판매할 수 있다. 그리고 다른 국제기구등의 수공예품등도 팔 수 있는 판매권을 받아 팔고 문화행사을 한다면 전국적인 규모가 될 것으로 지역의 명소로 자리 잡을 수 있다. 가장 윗층에는 각 나라의 음식점인 푸드코트을 만들고 말이다. 가끔식 각나라의 수공예품 만드는 강좌도 열고 ..관광정보도 알리고 ..
아롱에서 들어올 때 여러가지을 한국에 가지고 왓다. 퇴주잔과 술잔은 어려서 부터 제사을 지내서 이고 대전성모여자고등학교에서 경주로 수학여행를 가서는 황동향료을 사가지고 와서 그 향료에 제사을 지낼때 향을 피웠다. 우리집에서는 제사을 지낼때 남자만 절을 한다. 여자는 안한다. 음식하고 고생은 하지만 ...
난 방그라데시에서 하모니언을 배웠다. 다른 동기에게 물으니 최정실이 한다고 해서 같이 하모니언을 배웠다.하모니언 선생을 구하는 것도 어려웠다. 여자이어야 하고 방글라데시에서는 학교에서 음악수업이나 미술수업이 없다고 한다. 관심이 잇으면 개인적으로 배워야 한다. 한국도 학교에서 피아노을 가르치지는 않는다. 아버지가 피아노을 치는 관계로 어려서 아리랑 전자오르간이 집에 있었고 아버지가 클래식음악을 엘피로 틀기도 했다. 어렴풋이 나는 어려서 검정 작은 피아노가 있어서 가지고 놀았다.그러나 피아노을 배우지는 않앗다. 고등학교때 잠시 수녀님이 바이엘을 음악시험으로 봐서 학교 오르간실에서 연습을 하곤햇다. 2학년이 되면서 음악선생님이 특별케이스로 합창부에 뽑았다. 내가 클래식 음악회 티켓을 학교에서 학생할인권을 자주 삿었다. 나는 음악회가는 것이 참 좋았다.
방글라데시에서 저녁에 책을 읽기도 지루하고 그러다 라디오에서 하모니언을 소리고 듣고가지푸르에서 농업연수원에서 농업연수가 끝나면 공무원들이 하모니언을 치며 노래을 부르고 다른 한편에서는 토블라을 친다. 방글라데세 사람들은 로빈드로 타골 셩깃보다 누줄 이슬람의 셩깃을 좋아한다며 민중의 삶을 노래한 그의 시을 노래로 불렸다. 약간은 느릿한 구성진 노래로 한손으로는 바람을 넣고 한손으로는 작은 피아노 건반을 누른다.
한국에 돌아올때 하모니언을 가지고 갈 것인가 남을 줄까 고민하는데 오피스사람들이 가지고 가라고 해서 한국에 가져왔다. 또불라도 가져왔다. 그런데 조카들 놀이감이 되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가끔씩 저녁에 하모니언을 국내훈련에서 나누어준 한국노래 악보을 보며 건반을 치며 시간을 보냈다. 한 참 치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한국에 돌아와 큰 남동생 딸를 돌보는데 한해는 하모니언을 가지고 놀고 토불라에 색연필로 찍 선을 긋기도 했다.
방글라데시에서 올때 아롱수공예전문점에서 가죽지갑과 열쇠고리 ..천에 자수을 놓은 것으로 아플리케을 해 옷에 대서 입을 수 있는 천 리본 어리 묶는 끈 기념면티.방그라데시지도가 그려진 앞치마 나무주걱과 나무수저와 포크등 세트 방글라데시 전통복장인 살로와르 와 가미등을 가져왓다. 그리고일본 jocv가 방글라데시을 떠나면 준 하얀 이불에 수가 놓아진 것도 한국에 가져 왔다.그리고 밥풀 진주와 분홍진주타이거아이라는 보석도 한국에 가져와 아버지와 어머니 금반지을 해드렷다.. 아롱수공예품전에는 은으로 된 가공품들도 있었는데 나는 미쳐 사가지고 올 생각은 못했다.어떤 영사부인언니는 은으로 된 허리띠을 사기도 햇다. 친구가 결혼한다고 연락이 와서 가죽함을 선물도 대전에 보내기도 했다.내가 나무수저세트을 가져온 1995년에는 시장에 나무수저세트가 없었다.방글라데시에서 외교행랑으로 방글라데시 채소씨앗을 보내기도 했었다.
나는 방글라데시에 가서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테니스을 치다가 발목의 인대가 다쳐서 처음에는 고생을 하고 첫겨울에는 발목이 시려서 양말을 꼭 신어야 했다. 기브스을 하고서 우울한 가운데 다카시내의 굴산이라는 곳에 아이디어하는 수공에품점에 갔는데 은발찌가 한짝이 있었다. 그때는 한짝만 하면 과부하는 뜻을 모르고 했다. 그냥 내발목이 아파서 한짝있는 은발찌가 사고 싶어서 샀다. 그리고 방글라데시에서 하얀색팔지을 샀다. 츄리라고 그곳에서는 부르는데 힌두교라는 표시란다. 처음에 집을 구하려 아사드게이트센타에 아이사라는 동료와같이 다는데 집을 거절해서 나중에 알고 보니 내 팔찌가 원인이었다. 그래서 나중에는 발찌도 안하고 흰색의 팔찌도 안하고 다?다.그런데 한국에 가져 왔는데 은발찌가 없어?다. 원예센타에서 일하는 분들이 내가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하자 금귀걸이을 해주었는데 그것도 어디로 가고 없다.
아롱에는 옥으로 만들어진 다양한 수공예품이 있었는데 무거울 것 같아서 사오지 못했다. 아사드게이트센타에 어느날 파키스탄 영사가 다녀가면서 옥으로된 팔찌와 반지 세트을 주어서 좀 조잡하지만 한국대사관에 근무하던 언니에게 전화을 하니네팔에서는 청혼이란다. 그래서 빨리 돌려주라고 했는데 대사관에 전화을 해도 연결이 안되어 못돌려주고 한국에 옥을 가져왓았다. 한해가 가지고 놀앗다.애기들 장난감 같았다. 30년이 흘렀으니 옥가공실력도 많이 낳아졌을 것 같다. 한국의 목욕탕이나 건축자재에 옥이 많이 보인다.어디서 들어오는지 물어보지는 못했다.. 부탄으로 UNV을 다녀오니 파키스탄에도 한국해외봉사단이 파견되고 있었다.
방글라데시에 올때 다카의 봉고바자르에서 사서 입던 ?래어 스커트와 티셔츠 와이셔츠등을 한국에 같이 가져왔다. 내가 보기에는 괜찮은데 동생들은 나보고 5060년대 여자가 되어서 돌아왔다면서 옷들도 구식이라고 했다. 그리고 아사드게이트원예센타에서 싱가포르안 코코넛을 상자에 넣어서 한국에 가져와 충남대학교 원예학과에 기증햇다. 한데 내가 잘못했다. 농촌진흥청에 기증했어야 한다. 코코넛이 잘 자라게 하기위해서는 제주도 같은 곳이나 남해안에서 길러야 한다. 소금기가 있는...코코넛을 일반 땅에서 재배할때는 소금을 좀 주어야 한다고 한다.원예센탄에서는 나보고 미스티을 비행기도 타고서 가져가라고 했다. 튀긴과자을 설탕물에 졸인것인데 그것을 비행기안에 들고 들어가서 한국에 가져가라고 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미스티가 고급 디저트다.홍차와 함께 먹는 ...삼우차을 먹기는 하는데 차와 먹는 것은 잘 보지 못하고 간식으로 먹는다.
지난번에 대전에 충남대 근처에 대전이스람센터에 갓다가 그 옆에 월드마트에 삼우차가 있어서 머고 싶어서 삿는데 냉동식품을 냉장고 밖에 내놓고 나누어 튀기려 했더니 튀김옷이 다 벗겨?다.
파키스탄제품이었는데 다른날 가서 삼우차을 사먹어야 할것 같다.방글라데시에서는 아사드게이트센타에 근로자들이 월급을 받으면 처음에 다 쓴다고 한다. 우리나라 카드값나가듯..그래서 나중에는 부리을 먹고 산다고 한다. 그래서 오전 11시에 근처가게에서 삼우차가 나오는 시간에 가서 삼우차을 사서 사람들과 간혹 나누어 먹었다. 따뜻해서 맛있었다.아버지는 건설현장에 나가기전날에 담배을 한보루 준비하셔서 가셨고 이야기을 들어보면 아침에 야참인가 뭔가을 먹기도 한다고 하셨다.사람들에게 담배한개피을나누어준다고 했다.대전에 교보문고에 인도 식당이 있어서 어머니에게 음식을 사다드렸더니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셨다. 한국의 카레와 인도식당의 카레는 좀 달랐나보다.
방그라데시 다른 단원들은 방글라데시 옷이 구식스타일이라고 안가져오고 그대신에 아사커튼호랑이가죽 진주 보석등다양한 것을 준비한것으로 안다. &39
]어제 당근에 퇴주잔과 술잔을 팔려고 내놓다가 오늘 다이소에 가서 윤을 내서 다시 사진을 찍어 올려야 겟다는 생각이 들었다.동네에 수저을 파는데 황동같은 수저을 판다.방글라데시에서는 멜라닌그릇을 사고 스테인리스그릇을 사기는 했는데 한국에 안가져왔다.방글라데시는 그당시에 한국의 찻잔과 비교하면 약간은 컸다. 그리고 얍상하지 않고 약간은 두터운 감이 있었따. 화려하지도 않다. 그릇들이 ...
몇해전에 친구와 겔러리아 백화점에 갔다가 찻잔을 보니 참 화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주로 유럽것으로 상당히 비쌌다. 덴마크에 찻잔세트는 일억을 홋가 했다.어떤 브랜드는 찻잔을 뒤집어 보니 메이드 인 스리랑카라 놀랬다.
그래서 나도 돈만 있으면 동남아다른 나라 그릇거과 주방세트을 파는 빌딩을 하나 구성해 식당이나 찻집을 해서 데코레이팅을 바꾸면서 그릇장사을 해도 좋겟다는 생각이 들었다.현재 행남자기는 식당위주로 영업을 하다 망했다고 하고 한국도자기가 남아는 있는데 대전에는 백화점에 진열을 안한다. 외국에서 유학을 다녀온 분들이 유럽등지에서 그릇을 많이 가지고 들어오나 보다.난 부탄에서 푸술링에 가서 하얀찾잔을 샀는데 어느 브랜드인지 보지 못햇지만 얇으면서 잘 빠졌다.한국에 올때 이시에게 팔았나 누군가에게 팔았다.국제기구나 다른 봉사단도 그나라을 떠날때 물건을 다른 사람들에게 판다.그냥 주기도 하고..국제기구에서 일하는 사람이야기을 들으니 그릇이나 가구을 들고 전세계을 돌아다닌다고 한다.스위스친구는 처음에 팀퓨시장에서 티벳그릇을 사더니 나중에는 배편으로 스위스 자기그릇세트을 가져와 사용했다. 유니세프로 나가는 친구에게 그릇을 좀 챙겨가라고 했다. 면접볼때 쯤에 만나서 잠깐 하루밤 자고 그다음에는 만나지 못했다. 서울에서맛지창간작업을 할때 전화가 와서 롯데백화점에서 식사을 하고 헤어지고 만나지 못했다. 그 후에 인도네시아에 나가서 유니세프에 북한사람들이 방문했다고 이메일을 보내고 연락이 끊어졌다.
나중에 한국에서 전화를 하니 제주도인가에게 국제 협력업무을 보고 있다고해서 부산에서 전화을 끊었다.그때 애 아빠와 부산 사상모라동에서 애 낳고 살고 있었다.
그당시에 부산에는 소국들의 영사관이 몇군데 있었는데 지금은 많은 영사관들이 부산에 문을 열고 있었다. 국제시장이나 자갈치 시장을 구경을 못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다양한 시장을 방문하고 아이들줄 크레파스도 사서 현지인집에 가면 아이들에게 크레파스을 주고 동화책도 선물했다.그때는 외국인들 집에 방문하면서 와인은 잘 안들고 다녔다. 와인을 선물할대는 3달러짜리을 들고 갔는데 부탄에서는 UNV로 활동하면서 10달러짜리 와인을 사서 다녔다.
한국에 올때 부탄인들이 많은 천등을 선물했는데 나는 한국에 와서 다 친구와 친척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아무도 전시회을 열라는 이야기나 코치가 없었다. 어느 엔지오 박람회에 가니 수공예품을 전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부탄UNV로 나가기전에 한국자원봉사백과서전을 만들면서 종로에 위치한 기독교연합회관이나 여자기독교 협회을 방문해 해외지원을 알아보고 코바에 네팔선배인 김미행씨가 나에게 송파구인가의 어느 교회에 가나안농군학교 교회을 가자고 해서 몇번갔는데 대부분 교수나 의사라고 했다. 자원봉사백과사전을 만들떼 네팔에 의사들이 자원볼사연합회장미회도 자료조사을 갓었던 것 같다.
한국청년해외봉사단이 외교부산하에 한국유네스코협회에서 만들어져 국제협력단으로 이관이 되면서 해외선교사들이 긴장을 했다고 한다.그리고 교관들은 우리는 배우러 가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세월이 흐르니 트럼프가 USAID 지원을 끊는다고 해서 그 점을 이해을 하면서도 여러 생각이 든다.미국은 UN탈퇴을 선언하기도 했었다. 미국에는 많은 종교 선교단체와 국제 엔지오가 존재한다. 다방면에 ...외교는 국가간에 하는 것이지만 미국원조기관에 등록된 엔지오와 트러블이 많나보다 생각도 든다.
미국평화봉사단 오비회도 한국에 존재하는 것으로 안다.20년전에 서울 명동유네스코 회관에서 어느 세미나을 가니. 연사인가 손님인가 양복을 입고 자신을 소개하는데 미국평화봉사단으로 한국에 산지 10년이 되었다고 했다.그들은 한국에서 무엇을 가지고 미국에 갔을까
부탄에서 일본 JOCV에게 들으니 일본관광객들은 남대문시장에 들려서 한복을 사간다고 햇다. 20녀전에 일본외무성 홈페이지에 외무장관이 세계각지에서 파견되어 활동하고 돌아온 JOCV만나는데 그들은 각자 파견된 나라의 전통복장을 하고 서 있었다.
방글라데시에 알던 JOCV는 자신들은 파견국가에서 계약을 종료하고 일본에 돌아가면 천황을 만난다고 했었는데 고개를 갸우뚱햇었다.
우리는 한국청년해외봉사단으로 파견될때 1993년에 국내훈련 말기에 서울에 청와대을 방문해 김영삼대통령을 예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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