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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은 종합예술.어떤 그림을 그려야 할까

박향선 |2025.04.10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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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은 종합예술.어떤 그림을 그려야 할까
국민, 신한은행통장 분실.국민은행나보다 열살은 많은 사람이 이용한 듯,고려대 라고 나옴

요새 오너스클럽 하루과 삼성법인영업팀교육 하루등 에이스에셋 이라는 곳에서 하루 토지 분양회사에 하루씩나갔다. 10년 전에도 일비 7만원을 주었다. 그곳에는 대부분 50대에서 70대여성분들이 일을 하고 어쩌다 남자분들이 있다,

이곳에서는 땅에 대한 이야기을 한다. 그당시에는 조회시간에 젊은 남자분이 땅에 대한 분석을 한다. 그 주변에 산업단지등 국토개발에 대한 이야기을 하고 도로가 어떻게 건설되고 철도가 어떻고 어떤 기업의 공장이 들어온다고 이야기 한다. 그려면서 시골땅을 쪼개서 판다. 기획부동산이다.

예전에 아버지가 40년전에 김포에 땅을 산것이 있다고 들었다. 이것이 그린개발벨트에 묶여 있는데 도시계획상은 네거리에 있는 땅이라고 했다. 집에 어려운 시기가 있어도 이땅을 팔기위해 서울의 부동산에도 내놓기고 세금을 내기도 했다고 한다.그런데 이땅을 팔기가 힘이 들었던 것이 지분으로 묶여 있어서 이땅을 팔기위해서는 여러명의 도장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대전에서 서울까지 수도 없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했다. 어머니에게 차비을 받아서 ....

애아빠가 살던 부산에 모라3단지까지 오르락 내리락하면서 잠깐 티비을 보니 김포가 개발이 되었다고 한다. 내 큰 남동생과 같이 살던 올캐가 살던 포천도 도시개발이 된다고 뉴스에 나왔다. 벌써 17년정도 된 이야기다 내 큰남동생은 이혼을 했다고 해서 어머니가 조카남매을 데려와서 부모님과 같이 돌봤는데 그 동안에 올캐가 집을 다녀간 것은 딱 한번이다. 술장사을 시작해서 어머니가 애들이 거지처럼 밤중에도 밖을 나돈다고 해서 아무것도 없이 집에 데려왔다,. 옷도 없이 이불도 없이....그래서 그때쯤에 이불을 살려고 햇다. 그 때 대전여성신문에 다녔는데 이경우대전지사장은 월급을 주지도 않았다. 서울의 여성신문본사에서는 잘 부탁한다고 이야기을 하고 .....그때 여성신문이 경영이 어려워져서 한나라당 관계자에서 인수가 되어 여성기자등 서울을 서울본사대로 문제가 많았고 다른여성신문지사들은 지역에서 상당한 활동들을 하고 있었다.

아무튼 그때 그만둘까 하다가 여성신문 본사에서도 그러고 대전여성계소식도 담고 싶었고 ...이경우을 나중에는 고용노동청에 고소을 했다. 나는 조카을 돌봐야 하는데 조카들 옷도 못사주고 이이불도 그렇고 내가 사업을 구상하며 홍콩을 가려던 것도 다 무산된 채에서 참았다.나중에는 사무실 월세을 못내서 문이 잠그었다.

이경우 지사장이 나중에는 돈을 오만원씩 주는 것이다. 밀린 월급을 다 주는 것이 아니라. 그러면서 고용노동청에서도 그 여자 나쁘다고 이야기 해서 나중에 만나서 이야기을 들으니 이경우 지사장이 하는 말이 노동청에 벌금을 내겟다는 것이다. 당신에게 밀린 오개월 월급대신에 말이다. 벌금은 얼마 안된다고 한다. 그당시에 사무실을 내고 삼성생명보험회사에 간다고 아침에 잠깐 들렸다가 가곤 했다.

그때 당시에 40대 후반인가 50대 초입이었던가 했다. 지금은 육십대 이거나 70대일것이다. 키가 작다. 배재대을 나왔다고 대전여상을 나와서 .,...

어찌되었건 나의 계획은 수포로 가고 조카들을 돌보는 것도 참 힘든지경이었다, 그런데 십년전에 이집에 이사을 오기전에 남동생이 술이 잔뜩 취해서 어머니와 남동생을 데리러 이동네에 세븐맥주집엔가 데리러 왔는데 그러는 것이다. 자기 아내가 이혼을 하자고 법원서류을 보냈다고 ...알고보니 이혼을 한것이 아니라 별거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월이 지나고 나서 보니 조카들을 학교앞에서 만나고 했었던 것은 아닌가 ? 남자 조카 일학년때 집에 왔는데 그림일기을 봐주는데 글씨가 알아볼수가 없었다. 그래서 매일 저녁에 조카 그림일기을 그리면 글씨정정하라고 지시하고 글씨 교정을 하느라 다른 조카의 그림일기등을 봐주는라 저녁을 먹고 나면 2시간이 휙 지나간다. 큰 남동생 딸과 아들. 막내 남동생 딸도 같이 돌보았다,

막내 남동생 딸만 볼때는 집에서 치킨을 시키면 어머니도 한쪽 아버지도 한쪽 나도 한쪽씩 여유롭게 먹고 조카도 잘 먹었다.

그런데 큰 남동생 자식들이 오자 치킨 한마리 시키면 부모님과 나는 별로 먹지도 못하고 애들이 다 먹었다.

포천도 개발되고 김포도 부동산이 개발이 되었다는데 부모님은 아무 말씀이 없었다.부산에는 애아빠 엄마가 식당에서 일을 오래 하셨다는데 집에도 가스 레인지도 세탁기도 없어서 내가 손빨래을 하느라 손이 상해서 애아빠가 피부과을 데려갔었다.

나중에 애아빠가 내가 손썹까지 테워먹자 어느 날 대전에서 부산을 내려가니 중고로 가스레인지와 세탁기을 사놓고 좋아라 했다. 처음에 부산에 갔다가 애아빠와 있으면서 갑자기 그러는 것이다. 한달인가 두달인가 지나자 수도세가 많이 나오고 가스세가 많이 나온다고 ...

나는 상가주택에 살아서 일주일에 한번 목욕탕을 가던 습관이 있어서 ..그리고 집에서 밥을 해먹고 식당을 많이 이용안해서 처음에만 애아빠 엄마가 밥을 하다가 나중에는 애아빠엄마도 늦게오고
내가 밥을 하거나 애아빠랑 밖에서밥을 먹기도 했다.

그리고 애아빠 엄마가 나중에는 아침마다 샤워을 하고 얼굴에 크림을 바르고 페이스파우더을 바르고 일나간다고 나갔다. 모라동은 재첩국을 아침에 돌아다니면서 판다. 처음에는 애아빠 엄마가 집에서 끓이는 줄 알았다. 나는 애아빠가 깨어나면 재첩국에 파와 마늘등을 넣어서 다시 끎이고 애아빠가 늦게 일어나면 밥상차려주었다가 같이 나가자고 해서 밖을 나갔었다. 부산서면도 가고 태종대도 가고 아파트 뒷길로 사상도서관등도 가고

애 낳고 나서는 아니 자동차을 타고 경주로 해서 양산 통도사로 포항까지 자동차 드라이브을 했다.나는 집에서 애 보느라 피곤해서 집에서 쉬고 싶었다. 그런데 애아빠는 집에 있지 않고 자기가 쉬는 날이 금요일이라고 집에 들어오면 부산 시외로 자동차 드라이브을 가는 것이다.

쉬고도 싶고 좀 ....부산과 대전을 왔다갔다 하면서 대전역과 구포역과 부산역을 왔다갔다 하다가 나중에는 교통비가 싼 노포동에서 대전복합터미널을 왔다 갔다 했다. 부산모라동에서 애아빠가 노포동까지 운전을 해서 데려다 주기도 하고 나 혼자 애을 등에 업고 노포동까지 왔다 갔다 했다.

그러면서 부산에 있을때는 대부분 모라아파트에서 있으며 가끔 부산에 벡스코에 갔다. 그리고 부산시청에 이것저것 제안을 했다. 그 때 자산관리 공사에 이력서을 내기도 했다, 피시방에서 작성해서 보냈었다.

부산시청에서 전화가 오기 시작하고 창호엄마가 밥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뉴스에서는 부동산개발에 대한 뉴스가 계속나왔다. 농업은 부동산개발과 관계가 많고 관광단지 개발도 국토개발에 의해서 진행이 된다. 국토정보공사인가자료을 유심히 보는 이유다. 시골에 과수원을 하는 경우는 부동산투자로 하기도 하고 직접 농사을 짓기도 하기 위해서다.

과거에 기획부동산에서 토지분양등에 대해서 이야기을 듣다가 보니 대전인터넷신문에서 기사을 쓰는데 많이 도움이 되었다. 대전시청에서 나오는 개발에대한 기사을 릴라이팅하기가 쉬웠다.
나중에 대전 문창동에 그라시아 아트빌에서 분양임대 세입자 관리을 할때는 공인중개사협회, 건축사협회. 도시이용계획 각부동산관련 웹사이트을 보다가 나중에 주택관리사을 알게되어 집에서 매일 한시간씩 무크 강의도 듣고 EBS교재을 세권사서 공부도 했다. 나중에는 문제가 된 것이 내가 가지고 있던 노트북이 사양이 오래되어 무크 강의가 안되고 삼성생명 및에 서점을 갔더니 다른 교재가 없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요새는 자격증을 공부할때 책을 몽땅 질도 사서 공부하거나 협회등에서 책을 한질도 팔고 교재 강의도 진행이 된다.

나는 혼자서 공부하는데 다들 학원에서 공부한다. 하루종일 학원비도 몇백만한다. 부산은 내가 딸을 임신해서 부산 서면에 글로벌경영전문학교을 다니는데 그곳은 공인중개사, 주택관리사. 국제무역사, 세무,회계등이 국비로 진행이 되고 교육을 받으면 교통비와 식비가 나중에 나왔다.

다음사이트에 카페에 텐엔텐이라는 부산지역 재테크 카페에 가입했었다. 십억만들기 카페로 강의와 오프라인 모임이 진행되었는데 한번도 참석을 못했다,어느날 내카페가 다음사이트에서 없어졋다.

애가 초등학교 입학하고 나서 인가 그때쯤에 유성쪽에 부동산분양하는 곳에 입사을 해서 한동안 다녔다. 그곳은 다른 부동산회사와 달리 아침에 교육이 별로 없었다. 나와같이 면접을 본 여자는 목동 샵아파트 앞에서 부동산 공인중개사로 일하다가 나왔는데 같이 일하게 되었다. 남편이 공인중개사을 지키고 자신은 돈도 벌고 한다고 한 아파트가 개발이 될때 그앞에 부동산은 돈을 벌어서 공인중개사도 돌아다니면서 해야지 돈을 번다고 이야기 했다. 울산에서 경제개발원에서 잀했다는 사람과 같이 세명이서 다녔다. 그리고 자동차에 부동산 홍보카드도 꽂고 유성일대 부동산에 홍보하고 명함도 받아오고 파라솔 영업하러 노은역에도 갔다. 그때 유성 지하철역에서 세이브더 칠드런회원에 가입을 시작해서 지금은 다양한 기관에 후원을 했다.

지난해에 식당에서 문제며 방글라소식등을 접하고 아프고 별의별일을 겪다가 카드연체가 되고 딸은 대학수능 끝나고 제대로 여행도 못갔다. 조용히 살다가 폭풍우에 휩싸워서 어딘가로 내팽겨쳐 진 기분이다.

그 가운데어느 산부인과 조리실에 일을 가서 일하면서는 내가 산후조리원을 하는 것은 어떨까 생각도 하게 되었는데 산후조리사 교육받기가 만만치 않다.어머니가 조산원을 하셔서 임신부나 애가 낳고 산후조리....등 요즘과는 너무 다르지만 말이다. 25년전에 친구가 애기을 낳고 산후조리원에 갔었다는 이야기을 듣고 어머니에게 같이 사업을 하자고 제안을 했는데 어머니는 나이가 있어서 두렵다고 햇다. 돈을 빌려서 하는 것에 겁을 먹으셧다.

대학졸업무렵에 국제수학이라는 곳에 취직이 되었는데 그곳에서 처음에 교육청에서 받아온 자료로 학부모에 전화을 해서 상담일정을 잡고 방문해서 학습지학습을 권유하는 것이었다. 그때 회장님이 그 상담실에 있었는데 학교에서 교장인가 교사인가 퇴직을 하고 그 퇴지,금으로 아들에게 투자하고 그 회사을 나이가 있음에도 출퇴근을 하셨다. 그때는 30여년전으로 퇴직금을 잘못 투자해서 병을 얻는 경우나 퇴직금을 사기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리고 퇴직금이 연금으로 나온다는 소식을 접했다. 토지분양을 가보니 정년퇴직한 공무원분들도 나오는 것 같은데 그여자분들은 대부분 일비을 받아서 머리도 하시고 옷도 사입고 친구도 만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돈이 궁하신 분들도 니이가 젊으신 분들도 토지분양에 대한 설명을 들어보고 활동비 칠만원을 받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

대전의 기획부동산등은 익산땅과 공주세종시지역땅, 새만금땅. 태안땅, 구미땅. 천안아산땅등을 파는데 서울에서 나온 신문등에서는 필리핀땅이나 베트남의 부동산개발에 투자을 권유하고 있다고 한다. 친구는 캄보디아 땅을 샀다가 시세차익을 보고 팔아서 딸 유학자금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대전문창동 에코토피아에서 부동산에 네이버 광고로 분양 임대 광고을 하면서 인터넷으로 다국적 부동산을 검색하며 인적네트워크의 소중함을 생각하는데 남자동기들과 만날 끈이 없다.

20여년전에는 충남대 원예학과 남자동기들이 자기네 모임에 초대을 했다. 사업을 할 것이 없냐고 그때는 조심스러웠다. 내가 국제기구로 나갈 생각을 했기에 장사와는 ....

그런데 지나고 보니...젊은 애들이 희망도 많고 겁 없이 던빔다. 부동산은 종합예술이라고 했다대저의 빌딩들. 표정이 없다. 요새 유럽의 자그마한 빌딩등을 보며 우리주변의 주택과 빌딩을자세히 들여다 본다.

땅을계속해서 분양을 한다는 것은 위험하다. 그린밸트와 같이 통제가 필요하다고 본다. 전국토가 도시개발도 농토가 사라지고 산이 사라지고 있다.

상가분양은 앞으로 안될것이 아니라 구도심지에 상가에 유지관리와 부분적 재개발등이 필요하고 한국에서 구도심권의 상가귄리금에 대한 논의가 토론이 공론화가 되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빈 빌딩만 미분양 건물에 먹을 것이 없는 도시. 나라가 된다.

몇년전에 OECD에서 디지털세가 논의가 되고 도입된다고 했다. 그전에는 물류의 이동이 자유로워지고 홈페이지등으로 해외직구도 자유로워지고 다국적기업을 통제하기 위해서 관세 문제가 국제기구에서 논의가 되었다.

다국적기업은 현지나라에서 영업이익을 현지국가에도 배분해야 하는데 선진국으로 영업이익금을 다 가져가서 문제가 됐다. 대전에 르카프에서는 자선봉사단체에도 기부하고 고객들을 위해서 게임기도 무료사용하고 서점에 책에 비닐도 안씌우고 사람들이 돌아다니면서 시식도 비교적 자유로웠다. 그래도 말이 많았다. 영업이익금을 그날그날 본국으로 가져간다고

세이백화점도 부산사람이 운영을 하다가 미국법인에 넘어갓다가 지금은 어찌된 영문인지CGV남기고 페업이다.다른 백화점에 비해 고객이벤트로 일요일 마다 백화점 광장에서 고객을 위해서 춤공연과노래 공연을 펼치고 나중에는 백화점 7층 강당에서 음악감상회, 가수들의 공연, 클래식 콘서트등이 열리었다.

단기적으로는 상가 분양이 어렵겠지만 통신사업부가가치세가 30%라고 나와있어서 놀랬다.앞으로 한국에도 디지털세가 논의가 된다면 장기적으로 상가 분양은 된다는 것이다.

10년전에 세종시가 분양이 될때 상가 분양을 받으면 육개월에서 일년은 임대비가 무료에 인테리어 비용까지 지원을 해준다는 광고가 나왔다. 도안은 실패가고 사람들은 세종시로 인구가 유출된다고 걱정이 많았다.

그 뒤에 세종시 공공기관이나 도로등의 하자보수문제가 급격히 대두가 되었다. 장마가 되면서 대두가 되더니 급기야는 비가 많이 오고 둑이 터져서 터널이 잠기어 많은 피해가 났다..

에이스에셋상무에게 오이시디의디지털세을 이야기 하며 상가분양은 단기적으로 그러나 장기적으로 맑음이라고 이야기 했는데 기분나쁘다는 듯이 이야기 하고 팀장과 이야기 하며 남의 눈에 눈물나는 일을 못하겠다고 했다.

옛날과 달리 삼성법인 영업에 입과해 하루 교육을 들으니 근로자 보호보다는 기업개인이 먼저 하는 소상공인 생각을 하고 영업을 하고 부동산은 옛날로 돌아가서 언제 그린벨트가 풀릴지 지분에
묶인 땅은 혼자 개인이 못판다. 같이 팔아야 한다.

문창도에서 에코토피아에서 일하며 현장에서도 일을 하지만 인터넷에 올렸더니 서울에서도 큰손들이 움직였는지 전화가 와서는 호실을 이야기 하는 것아니라 빌딩 자체가 얼마냐고 이야기 했다. 그리고 다른 지역에서도 연락이 왔다. 모텔만 전문으로 하는 분도 왔다 갔다.

그러다 에코토피아 전화번호을 사장이 받겠다고 했다. 주위을 둘러보니 새마을 금고가 오층으로 다시 지어서 이사을 가고 모텔등이 다시 리모델링이 되고 새건물이 지어지고 했다.

몇년지나서 가보니 어떤 새로지어진 건물에는 유치권행사가 30여개 업체가 적혀있었다. 요몇개월 사이에 알게 된 일이다. 그지역은 우즈베키스탄과 몽골,카자키스탄등의 외국인도 많이 산다고 한다.

어제는 이런 저런 이야기을 할 사람이 정말 필요했다. 머리가 깨질듯이 아프다. 택시을 타고 집에 왔다. 국제 제조업은 외국에서 들어온 수입품이 너무 많고 유통업체는 그 백화점이나 마트에 들어가는 회사에서 사람을 넣는다. 그들에 대한 고객서비스교육을 예전에는 백화점에서도 했다. 요즘은 제각각인것 같다. 군대로 이야기하면 국군통수권이 사령관이 아니라 자대에 있는 것이다.

군사령부에 지휘권이 없이 자대들이 자대들의 이익만을 위해서 행동하고 전투을 한다면 그 지역은 어떻게 될것인가?

우리나라는 옛 그림을 보아도 김홍도의 그림에 스승이 회초리을 들어 학동에게 종아리을 친다.
예전에 미국에 이민간 한국인이 자식을 때려서 교도소에 간적이 있다. 한국에서는 대화도 중요하지만 자식의 훈육을 위해서 매을 대기도 한다. 우리가 중고등학교다닐때는 학교에서 시험을 보고 틀린개수대로맞기도 했다.

친구가 중학교에 임시직으로 영어선생을 갔는데 아이들을 틀린개수대로 때리고 나서는 한의원인가을 다녔다고 한다.팔이 너무 아파서 말이다..

이명박은 가난했지만 선생님이 이명박이 아까워서 어머니을 쫒아다녀서 상업계야간을 보냇다고 한다. 지금은 상황이 어려운데 야간 고등학교도 없고 대학에 야간대학도 사라졌다.

교직원연금에는 수익사업과 레저사업등이 있지만 제자들을 위한 장학사업이 없다. 예전에 선생들월급이 얼마 안되었다고 어머니가 말씀하셧다.그래도 선생들은 자신의 월급으로 제자들에게 나우어주고 월사금을 대신내주고 하는 미담이 많았다. 지금처럼자신의 이익과 자신이 가족의 안위에만 신경쓰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나라에는 군사부일체. 임금과 스승님과 부모는 하나다. 지금은 부모는 빠지고 돈만 내고 학교도 직장일뿐이다.

아이들 또한 스승이 아니라 선생이라는 직장인이라고 대우도 안해 주는 것 같다. 요새 나는 딸과 전쟁을 치르었다. 나이가 차서 알바을 하면서 알바을 하면서 얼마 받는지 그리고설겆이도 돌아가면서 하기로 하다가 몇번 하고나서 마는 것이다. 그래서 그냥 놓아두었다. 이것은 빈 건물이다. 음식이 없으니 그대로 두니 물이끼도 끼었다. 대전에 은행동 중앙로에 성원건설과 같은 것 같다.

우리가 그린밸트지역과 같이 국토개발도 구도심지 발전과 함께 가야지어찌 앞으로 전진만이 있을수 있을까? 유지 관리 해서 고부가가치 빌딩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말이다.

에코토피아에 다니면서 한밭도서관에서 건축을 어떻게 하는지 일기형식의 책에서 분양과 신탁에 대한 책도 보고 그라시아 아트빌에서 유치권이 행사되면서는 경매에 대한 책도 보았다. 내가 NPL의 영업적인 면과 건물관리을 한것이다. 고민중이다. 유치권이 진행될때 세입자 아버지가 오셔서 재계악인가을 하면서 자식을 부탁하고 갔다.

내가 영업에 이익이 없다고 해서 그만 두지 못하고 고민했었다. 그러다 에코토피아 일과 김밥집의 일을 같이 했다. 어머니도 챙기고 딸도 챙기면서 몸은 무척 피곤했다. 골치는 덜 섞고 딸에게 경제적으로 잘해줄수 있었는데 딸은 나와 시간을 많이 갖지 못하고 내가 쉬는날 같이 하고자 하는데 나는 너무 피곤해서 힘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화장품이나 옷등이 있었다면 부엌에서 일하지 않고 아마 서빙을 했을 것이다. 나중에 일을 해보니 서빙이 훨씬 쉽고 쉴 시간도 있다. 주방은 계속 움직이고 칼에 손을 베이고 물에 데이고 위험등이 많다. 주방에서 다치면 누가 보상도 안해준다. 자기가 해야 한다.

중대재해법이 발효되어 어머니의 일자리가 흔들리어 고학력층 대학생이나 석사학위나 유학생들에게 뒷받침 해줄 어머니의 손이힘없이 떨어졌다. 그자리을 외국인들이 맺구고 있다. 인력중개소는 어느기관이고 회사인가, 그들에 대한 월급과 복지는 제대로 되어 있고 아플 경우에는 어떤 병원과 의사에게 가는지...건설현장에 외국인 근로자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당장의 토지 분양도 마찬가지이다. 국토개발이 농림수산부와 환경부와 산업통상부와 외교부가 같이 이야기 되어야 하지 않겟는가?

기후변화와 환경라운드로 탄소에 대한 이야기을 하는데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 동물복지인가?인간복지인가?사람교육인가? 트럼프가 관세정책으로 세계가 두려워 하고 있다.

외국에서는 전쟁이 나면 왕이 직접나아가 싸운다고 한다. 기사들과 평민들은 나중에 따른다. 그래서 인지 중세시대에는 그 지역에 평민이 결혼을 하면 초야의 밤에 영주에게 아내을 받쳤다고 한다.
그시대에는 영토 확장을 위해 왕은 딸을 여러번 결혼을 시켰다고 한다.

장기을 두면 전쟁이 나면 왕을 보호하고 피신시키고 대신들이 지킨다. 졸병들이 전진기지에 배치가 된다.

외구인이주결혼여성들이 한국에 많이 들어왔다. 우리나라는 농자지천하대본이라 해서 농사짓는 땅을 무척 소중히 했다. 대다수 공산국가에서 온 이주여성들은 어떤 역사적 배경과 교육을 받았을까 중과러시아 국가 교류다 30년이 넘었다.

애도 국가에서 돌봄센터에서 돌본다. 청소년프로그램보다 청년들의 각종 사업공간이 있는데 평일에는 비어있다 시피 한다. 사회의 각종 복지 교육.....

우리는 가족이라는 공동체로 조카들과 손자와 손녀을 돌보았다. 제사때 마다 하루이틀 고부갈등이 고조로 메스컴이 소식을 알리고 드라마에 나오더니 지금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CCTV을 설치하고 유치원선생들을 잡고 있다 어떻게 교육이 이루어지겠는가?

우리어머니 말씀이 막내 남동생 아내가 딸을 보다가 딸이 방을 굴르니까 빗자루로 애을 마구잡이 로 어린애을 때리더라며 성깔이 보통이 아니라고. 한데 애기들은 먹는 것 보면 먹고 싶다. 예쁜 옷울 보면 사달라 뗴을 쓴다. 나도 조카을 데리고 한밭도서관에 갈려면 태평시장을 가로질러야 하는데 조카가 자꾸 사달라고 졿라서 조카을 데리고 택시을 타야 했다.

정부에서는 구도심지에 부동산가격이 너무 놓고 권리금이 텍도 없이 높다고 새지역에 건물을짓는 산업단지와 택지 개발을 계속한다면 아이교육이 어떻게 되겟는가? 기업은 기술자금을 받아서 기계만 사는 것이 아니라 공장지을 땅을 사고 건물도 짓고 기계도 사고 공장에 인력관리. 직원들이쉴수있는 조경도 만들어야 한다.

몇해전에 인터넷신문은 월급이 없어서 크라운제과에 공장에 하루가서 일을 했다. 아침에 유니폼을 입고 일을 하고 점심에는 급식이 제공되고 오후에는 중간에 휴식시간도 있다. 그리고 퇴근은 회사버스로 하는데 대덕구쪽에서 유성구와 둔산동쪽으로만 운영이 되었다. 나는 아침에 출근을 할대 택시을 타고 갔다.

한데 이야기을 들으니 크라운제과가 재정적으로 어려워서 공장을 풀가동을 안하고 있다고 했다. 일은 식당에 주방에서 일하는 것보다 쉽다. 그곳에서 만난분은 학원선생인가 학교선생인가을 햇다고 한다. 월급이 잘 나오면 아이들 교육하는데 이상이 없다.

마트나 시장에는 수십년전부터 태국과자 인도네시아, 유럽등에서 수입된 과자가 많이 팔란다. 동네 문방구에는 작은 회사나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에서 들어온 아주 조그마한 과자가 초등생들에게 팔리고 있었다.

태국에서 전자 재품 회사는 일본과 합자품으로 물보일러나 밥솥을 만든다. 우리도 대전의 부통산개발을 한다면 어찌 해야할까?우리나라 연금의 활용은 어디에 ? 토지 상속후 팔것인지?농사을 지을 것인지에 따른 부동산세가 조정이 되고 우리가 지키고 식량안보차원에서 농산물 보조금에 대한 논의와 수입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하지 않겠는가?

싱가포르는 도시국가이나 주위에 공산국가는 별로 없다.한국은 주위에 공산국가가 포진해 있다. 공산국가에서는 땅을 팔지 않는다. 외국인에개 빌려준다. 엔지오도 그나라에서 사업을 한 후 오년뒤에는 그나라 국가에 운영권이 넘어간다.

지난해에 대전 용문동에 아름다운가게에 갔다가 그곳이 한남대에서 관리을 한다고 해서 깜짝 놀랫다. 시민들의 봉사자와 한남대 학점봉사자들이 와서 봉사활동을 하고 학점을 받는 학생들이 왔다갓다 하다가 매장을 한님대에서 관리하고 월급을 받고 일하고 있다고 나는 몇년전에 아름다운가게에서 자원활동가로 일했었다.

우리나라에 결혼이주여성들에게 한국에대한 소양교육과 공산국가와 자본주의 국가가 다른 점도 알려주고 한국인과 교류하면서 한국일반여성들이 어떻게 사는지 알려주어야 한다.

시골은 그래도 결혼이주민 여성들이 동네 분과 어울리지만 도시에서는 일을 하고서 그들과국가사람들과 어울리다 집을 나가기도 해서 아이 교육때문에 난감하다고 한다. 남편이 나이가 많아 경제적으로 뒷받침을하면서 그나라에 땅도 사주고 그들의 친척을 한국에 초청한다고 한다.

도시의 아파트에는 한국인 남편은 출근하고 아내의 친척들이 늦게 까지 자고 일어나 상에 빙둘러서 앉아서 식사을 한다. 유학생들중에는 공부는 안하고 알바을 한다고 한다.택배등은 하루 일당이 14만원정도 한다고 한다.

여러가지 문제등을 논의하지 않고 유지 관리는 하지 않고 앞으로 전진 한다면 꼬리는 어디로 갈까?

어느 화가 그림에 아랫부분의 땅은 다 갉아먹고 가늘게 이어져 있고 윗부분에는 커다란 성이 깃발을 펄럭이고있는 것이 자꾸 생각나는요즘이다.

국가의 백년대계 ...나의 족보을 가져가 양반행세을 할려면 자식교육에도 힘써야 하지 않을까?가업의 계승에만 염염한다면 진정한 사람,교육이 되겟는가?

나 싫다고 집을 나간후 찾아오는 자 문제지만 둥지에 편한히 살면서 자식교육 제대로 하지 않는자 또한 이사회의 병페가 아닌가?

부분적으로 재개발도 되어야 한다. 자식들은 새 아파트에 살다보니 부모가 살던 주택에는 들어가 살지을 못한다고 한다. 아파트가 유지 관리비가 비싸도 아파트에 산다고 한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 유지 관리비가 적게 드는 공공임대아파트가 들어서고 있다. 저소득증을 위한 것이 아니라말이다. 저소득층에는 임대와 관리비가 부담이다. 주택이 저소득층에게는 아이들을 기르기에는 부담이 덜 든다.

미국은 잘 산다. 그러나 예전에는 고등교육받은 사람이 많지 않았다고 한다. 고등학교만 나오는 경우가 많았고 공부도 안하려고 한단다. 그래서 국가적으로 대학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자본가들이 후원을 많이 해서 장학금 많고 배우려는 자는 배울수있게 한다고 한다. 하버드대는 70%가 장학금으로 공부을 한다고 어디선가 보았다.

대학때 교수님은 미국으로 유학을 다녀오셨는데 주택에 아이들교육비등까지 제공이 되었다. 서울대 만 하더라도 친구에게 이야기을 들으니 박사과정도 장학금으로 한다고 한다.

미국은 이민자 사회다. 그런데 이민자들은 미국교육을 받으며 어떤 사고 방식으로 생활을 했을까?
한 30여년전에 40년 다되어 간다. 엘에이에 흑인 폭동이 일어났는데 한국 슈퍼마켙이 타켓이 되어서 피해가 컸다고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한국인들이 나눔에 인색해서 지역사회에 도네이션, 기부을 많이 안했다고 한다. 기독교 문화이다보니 십일조가 있어서 교회등에 기부을 한는데 아마 한국인들은 지역사회에 기부가 아니라 교회에만 기부을 하고 교회는 지역사회을 위해서 일을 많이 안하고 제산축적만 햇었던 것은 아닌지 말이다.

미국은 장학제도등 복지가 잘 된 대신에 세금등을 내야한다. 친구들을 보더라도 잘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닌 사람도 있다.누구와 사이가 좋을까?

트럼프의 관세 정책을 논하고 이민자 퇴출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미국의 노동자들과 부자가 된 제3세계상류층의 나눔이 문제가 되지 않나싶다.

오죽하면 영국에서 파키스탄인 세탁소 사장과 그 밑에서 일하는 영국인 영화가 빗대어 나왔을까?
그영화이름이 생각이 안난다.

#부동산#상속세#기후변화#빌딩유지관리#이주민정책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부동산#상속세#빌딩유지관리#이주민정책#화교

 

어제 보니 신한은행통장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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